콘서트 다큐멘터리 <우드스탁>의 촬영기사로 영화 일을 시작하여 극영화 감독으로 전환한 리처드 피어스(<노머시> <패밀리 싱>)는 멤피스 블루스를 “가능한 한 현재 시제로 쓰려고” 노력한다. 블루스의 제왕 B. B. 킹, 수십년간 음악계를 떠나 세탁업에 종사했다가 다시 돌아온 로스코 고든, 현재에도 옛 블루스맨들의 유랑공연 방식을 이어오고 있는 바비 러시의 행보를 영화는 교차하며 담는다. 상대적으로 다른 작품들에 비해 옛 공연 클립이 적은 편이지만, 흑인들의 음악만으로 천대받던 블루스가 어떻게 백인 문화와 화합했고 또 발전했는지를 꼼꼼하게 채집된 감동적인 일화들로 보여준다. 가령, 공연을 마친 바비 러시가 다음날 교회에서 춤을 추며 즐거워할 때, “토요일 밤에 본 사람과 일요일 아침에 본 사람들은 같은 사람들”이라는 영화 속 어느 대사의 의미는 명확하게 다가온다. 혹은 블루스의 대중화 시절, 자신의 콘서트에 백인들이 가득 차 서성거리는 것을 보고는 버스기사에게 거듭 여기가 맞냐고 물었다던 B. B. 킹의 일화는 가슴 뭉클하기까지 하다.
더 블루스: 악마의불꽃에휩싸여
Description
[더 블루스] 시리즈를 기획하고 지휘한 마틴 스콜세지의 연출작 [고향으로 가고 싶다]는 델타 블루스에 대한 오마주에서 시작하여 아프리카 말리의 민속음악으로까지 블루스의 역사를 거슬러올라간다. 콘서트 다큐멘터리의 교본으로 인정받는 [우드스탁](1970)의 총편집을 맡았고, 록음악 다큐의 고전이라 칭할 만한 [마지막 왈츠](1978)를 연출했던, 한편으론 [마틴 스콜세지와 함께하는 영화여행]으로 이미 역사 여행에 독창적인 능력을 선보였던 마틴 스콜세지가 이번에는 블루스 뮤지션인 코리 해리스를 화자로 등장시켜 인류학적 고찰로 가득 찬 음악과 역사의 동반 여행을 떠난다. 마틴 스콜세지는 말한다. '당신들이 리드 벨리, 선 하우스, 로버트 존슨, 존 리 후커, 찰리 패턴, 무디 워터스의 음악을 들을 때, 심장은 감동에 차 흔들릴 것이고 그 본능적인 에너지와 단단한 정서적 진실에서는 영감을 얻을 것이다. 무엇이 인간의 본질이고 인간으로서의 조건인지 심장 속으로 들어가보라. 그것이 바로 블루스다.
흑인들의 문화에서 나온 음악이라는 것을 제외한다면, 힙합과 블루스는 대체 무슨 관계가 있을 것인가? 불운한 흑인 래퍼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슬램>을 만들어 이름을 알렸던 마크 레빈은 이번 영화의 초반에 그런 고민에 부딪혔다. “록음악을 블루스의 아들이라고 부를 수는 있지만, 힙합은 턴테이블과 비트에서 나온 것 아닌가” 하고 스스로 질문했다. 마크 레빈은 랩그룹 퍼블릭 에너미의 멤버 척 D와 시카고 블루스 명인들의 곡을 레코딩한 것으로 유명한 체스 음반사의 사장 마셜 체스를 화자로 등장시켜 힙합과 블루스가 어디에서 만날지 그 해답을 얻기 위해 여행을 떠나본다. 그 여행길에서 인기 정상의 힙합 아티스트는 오래된 블루스곡에 도취되고, 블루스와 힙합의 정신적 유대관계에 의심을 품었던 감독은 그 혈연관계를 확인한다. 마크 레빈이 얻은 해답. 그 시절 블루스는 “악마의 음악이었고, 섹스였고, 부모님이 못하게 한 모든 것이었다. 힙합과 랩처럼 말이다.” 척 베리, 훌링 울프, 무디 워터스, 폴 버터필드 블루스 밴드의 미발표곡들을 후배 뮤지션들의 연주로 들어볼 수 있다.
대학 시절 트럼펫과 기타 연주에 능했던 마이크 피기스는 트럼펫 연주자가 필요한 팝 밴드를 찾아다녔다. 그러다 합류한 밴드가 뉴캐슬 지역 어느 대학의 ‘레드, 화이트 그리고 블루스’란 밴드였다. 재미있게도, 리드 싱어는 브라이언 페리(글램록의 대표주자)였다. 때는 1960년대였다. 미국에서 건너온 흑인들의 블루스 음악은 존 메이올, 제프 백, 밴 모리슨, 톰 존스, 플릿우드 멕 등과 같은 뮤지션들에 의해 영국에서 블루스 록 음악으로 부활하고 있었다. 마이크 피기스는 그 시대의 문화적 충격에 초점을 맞춰 기억을 더듬는다. 에릭 클랩턴, 존 메이올, 로니 도니건, 스티브 윈우드 등 1960년대 블루스 음악 운동의 주요 인물들을 차례로 인터뷰하는 한편, 누구도 쉽게 한자리에 모으기 힘든 밴 모리슨, 제프 백, 톰 존스, 룰루, 피터 킹 등의 뮤지션들을 모아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 즉석 연주를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