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10여년이 지나 버려진 수용소의 현재 모습은 흑백의 기록화면으로 이어진다. 12년 전 빈 들판엔 수용소 건설이 진행되었고 ‘밤과 안개’ 작전으로 유대인들이 수감되기 시작했다.
네덜란드계 카리브 출신인 샤부는 악명 높은 로테르담 사우스 지역의 페이퍼클립이라는 동네에 살고 있다. 이곳에서는 모든 주민이 서로를 돕는다. 올 여름 넘어야 할 큰 장애물이 있는 샤부에게는 그러한 도움이 필요하다. 그 이유는 바로 할머니가 휴가를 떠난 동안 할머니의 차를 타고 다니다 사고를 낸 것. 샤부는 음악 작업을 제쳐두고 자동차 수리비를 벌어야 한다.
파나마의 한 마을에 늙은 여인의 혼이 맴돌고 있다. 그녀의 이름은 세노비아 세루드. 예전부터 모든 종(種)을 수집한 박물관을 한 아마추어 예술가다. 글, 작품, 상상의 결정체들로 자신의 집을 가득 채운 그녀는 마지막 소망을 남겼다. 이곳에 있는 모든 것을 그대로 남길 것. 그리고 《마음의 평화가 필요할 땐 박물관을 만들어》의 감독들은 그녀와 그녀의 세계가 영원 속에 머물 방법을 찾는다.
〈시간의 조란학〉은 20세기를 배경으로 한평생을 조란학 체계 수립에 바친 독일 조류학자 막스 쇤베터를 다룬다. 조류학자, 조란학자, 원정대원들, 박물관 직원, 수집가뿐 아니라 군인들, 심지어 국가 반역자들과 교류하며 무려 19,206개의 알을 광적으로 수집, 연구하던 그의 일상 너머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영화는 쇤베터가 주고받은 서신과 역사적 사료를 기반으로 흘러간다. 내레이터 목소리로 들려주는 서신 속 구절이 콜라주를 이루고, 알 수집에 골몰한 쇤베터만의 세상과 전쟁에 휩쓸린 더 큰 세상이 아카이브 자료를 바탕으로 대조되며 재현된다.
트라우마 치료를 받는 22세 제이슨을 고통스러울 만큼 솔직하게 다루는 이 영화는 실패로 귀착되고 있는 네덜란드 청소년 복지 정책에 대한 마샤 옴스 감독의 3부작 마지막 작품이다. 전작인 〈알리시아〉와 〈펑크스〉와 마찬가지로 감독은 매우 개인적인 시선으로 현상을 비판적 관찰한다. 카메라는 어린 시절 상처로 인한 심리적 후유증을 앓는 제이슨을 면밀히 담는다. 집중 치료 과정을 통해 우리는 16세에 청소년 복지시설 입소 후 더욱 심각해진 제이슨의 상처의 깊이와, 청소년 정책 시행 시 그른 판단이 얼마나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지 가늠하게 된다. 감독 마샤 옴스의 사려 깊고 겸손한 태도는, 제이슨을 희생자 중 하나일 뿐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같은 고통을 받는 타인을 구하는 행동주의자로 묘사한다. 무엇보다 영화는 제이슨으로 하여금 상처 입은 내면을 기꺼이 공개하도록 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북돋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