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지 않는 세상에서 입술 대신 손으로 말하는 젊은 남녀가 있었다. 축구선수가 되고 싶던 젊은 청년과 선생님이 되고 싶던 숙녀는 곧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청각장애를 가진 그들은 꿈을 이룰 수 없었기에 청년은 목수로, 숙녀는 미싱사가 되어 부부의 연을 이어간다. 그들의 사랑은 결실을 맺어 예쁜 딸과 건강한 아들을 얻게 된다. 들리는 세상에서 목소리로 말을 하고 손으로도 말을 하는 두 꼬마가 자라게 된다. 청각장애를 가진 엄마, 아빠였지만 그들은 건청인으로 태어났고, 다른 사람과 다르게 손말을 먼저 배우고 늦게 입말을 배우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그 누구보다 빠르게 어른들의 표현방식을 배우게 되고, 듣지 못하는 엄마, 아빠의 통역사가 되어 세상과 이른 소통을 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고1이 된 딸 보라는 갑작스러운 학교 자퇴와 함께 인도 여행을 선언하고 중학생 아들 광희도 평범이라는 궤도를 벗어나 고등학교를 대안학교로 선택하게 된다. 과연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주인공 영찬은 아주 어렸을 때 시각과 청각을 잃기 시작, 지금은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들리는 것은 온통 소음뿐인 상태가 되었다. 그는 스스로를 '달팽이'라고 부르곤 한다.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하려면 마치 달팽이처럼 촉각에 의존해 느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한 때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소외돼 있고 단절돼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순호'라고 불리는 한 여자가 그의 삶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키가 아주 작고 척추 장애를 안고 살아온 그녀는 영찬의 삶을 바꾸어 놓게 된다. 그녀와 결혼한 그는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었던 것들을 갈구하기 시작하고, 아주 외로웠던 이 달팽이는 눈썰매를 타고, 수영을 하고, 그 만의 언어로 수필과 시를 쓰는가 하면 연극 대본을 써서 아내로 하여금 연출하게 하기도 한다. 이제 쉽게 좌절하지 않는 영찬, 그러나 그에게도 여전히 헤쳐나가야 할 것은 있다. 바로 그의 통역자이자 안내인인 아내 없이는 아무데도 갈 수 없다는 것. 어느 날 한 사회복지관에서 만난 시각 장애인을 통해 두 사람은 영원히 함께 할 수는 없다는 사실과 순호 없이는 영찬이 쉽게 다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보행 훈련. 어느날 영찬은 아내 없이 혼자 사회복지관 차를 타고 보행훈련을 받으러 간다. 바닷속에서 수영을 하는 영찬의 목소리를 들려주며 마무리를 짓는다.
가족 중 유일하게 듣고 말할 수 있는 폴라는 파리 전학생 가브리엘에게 첫눈에 반하고, 그가 있는 합창부에 가입한다. 그런데 한 번도 소리 내어 노래한 적 없었던 폴라의 천재적 재능을 엿본 선생님은 파리에 있는 합창학교 오디션을 제안하고 가브리엘과의 듀엣 공연의 기회까지 찾아온다. 하지만 들을 수 없는 가족과 세상을 이어주는 역할로 바쁜 폴라는 자신이 갑작스럽게 떠나면 가족들에게 찾아올 혼란을 걱정한다. 게다가 늘 사랑을 줬던 엄마의 속내를 알게 되면서 폴라는 급기야 오디션을 포기하게 되는데…
패배할 때도 있다. 그래도 승리를 향해 돌진한다. 어마리와 메릴랜드 청각장애인 학교 풋볼팀 선수들의 눈물과 땀. 그들은 예고 없이 찾아온 슬픔과 항상 따라다니는 차별에 맞서며 나아간다.
감독은 청각장애인인 부모가 처음으로 소리를 경험하는 생애의 기념비적 순간을 카메라에 담는다. 노부부는 65세의 나이에 달팽이관 이식수술을 받기로 하는데, 고요함에서 소리로의 여정은 쉽지가 않다. 얻는 것도 많고, 잃을 것도 많은 이들의 경험은, 다큐멘터리이자 한 편의 러브 스토리로 남는다. 재미와 흥미를 노린 픽션 작품들이 있음에도, 그에 비해 거칠고 정제되지 않는 다큐멘터리를 대중들이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삶의 진정성과 인생의 진실, 그리고 거기서 느껴지는 진한 휴머니즘……. 브로드스키 감독은 청각장애를 가진 친부모의 수술 전과 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낸 이 작품을 통해 우리의 기대를 충실히 채워준다. 부모가 수술을 통해 현재보다 더욱 행복한 삶을 살 것이라는 기대에서 다큐멘터리는 출발한다. 하지만 수술은 행복의 도구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알게 되는 것은, 부모의 장애가 그들 가족을 지켜주는 힘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들 가족 행복의 원천은, 가족이 서로 부족함을 이해하고 의지하며 함께 나누는 사랑이었다. 감독은 작품에서 수술 전 가족의 행복한 모습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수술 후 어머니가 겪는 혼란에 천착한다. 이들 가정의 행복한 모습이 아름다웠던 나는 이들 부모가 수술을 받고 소원하던 청력을 회복했다는 식의 해피엔딩을 기대했지만, 이것이 또한 다큐멘터리가 말하고 싶은 인생의 이야기가 아닐까? 감독은 이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우리가 가족을 통해 나누고 싶은 우리네 인생의 감성과 우리가 갖는 현실의 아픔을 직시하게 하는 우리네 인생의 이성을 순차적으로 잘 담아내고 있다. (EIDF 고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