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지도자의 인터뷰를 하기 위해 떠나는 토크쇼 사회자와 프로듀서에게 암살의 제의가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코미디.

1950년부터 1953년까지 한국 전쟁으로 남과 북에서 10만 명의 전쟁고아들이 발생했다. 전쟁의 상처를 치유할 능력조차 없던 시절, 남과 북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전쟁고아 문제를 처리하게 된다. 남한의 전쟁고아들이 ‘해외 입양’이라는 방식을 통해 유럽과 미국으로 이주했다면, 북한의 전쟁고아들은 동유럽 여러 나라에 분산 수용되는 방식이었다. 이름하여 현지 ‘위탁 교육’이었다. 그 결과 폴란드, 루마니아, 불가리아, 체코, 헝가리 등 동유럽 낯선 곳들에서 5천 명에서 1만 명에 달하는 북한 전쟁고아들이 10년 동안 생활을 했다. 이 이야기는 그들의 숨겨져 있던 삶에 대한 기록이다.

패전 이후 일본을 관할했던 연합군사령부(GHQ)는 1948년 일본 정부와 함께 조선학교 폐지령을 내린다. 오사카 지역의 조선인들은 이 조치에 거세게 저항했고, 그 과정에서 16세 소년 김태일은 경찰의 총에 사망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바로 일본 전후 최대의 대중운동으로 기록된 ‘4.24 한신교육투쟁’이다. 이후 70년이 지났지만 ‘우리학교’에 대한 일본 정부의 탄압은 계속되고 있다. 조선학교를 무상교육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 갈수록 거세지는 보수 세력의 혐오에 힘입어 아베 정권은 재일 동포 아이들의 교육을 정쟁의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 여전히 일본의 동포 사회는 아이들의 교육권을 위해 투쟁 중이다. 그 중심에 섰던 논픽션 작가 고유찬 감독은 다큐멘터리를 통해 민족 교육 수호의 역사를 집대성했다. 는 고희를 넘긴 고찬유 감독의 혜안과 의지가 만들어낸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역사 그 자체다.

외할아버지의 백수(99세) 잔치가 끝난 후, 손주대표로 생일카드를 읽은 나는 할아버지에게서 자서전을 의뢰받는다. 이년 후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 부탁은 숙제로 남았다. 외할아버지에 대한 나의 기억은 늙고, 검소하고, 자상한 어른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색한 그의 이름은 OSS 특수요원, 한국전쟁이 시작하던 당시의 치안국장 등으로 낯설었다. 외할아버지의 이름을 검색하 며 연관 짓지 못했던 과거의 역사를 알게 되었고, 필름메이커가 된 나는 나의 삶과 멀었던 이들의 장례에 자주 참석하게 되었다. 개인이 어떤 나라의 국민이 되고, 혹은 되지 못할 때, 그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국가는 국민을, 그리고 인간을 어떻게 지키며, 지켜주지 않으며 또 기억하고, 잊는가를 자꾸만 묻게 되었다.

일본 오사카 건국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재일교포 강선화와 그가 소속된 전통예술부 학생 9명이 한국의 전통 예술로 전 일본 고등학교 종합예술발표대회에 오사카 대표로 참가하는 도전기. 아이들의 노력과 지도교사의 헌신을 통해 자신들의 꿈과 정체성을 찾아가는 성장 드라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