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빰에 아직 십자 흉터가 있는가? 켄신의 과거를 알고 있는 남자, 에니시. 한때는 가족이었던 그가 사상 최강의 적이 되어 켄신 앞에 서고, 드디어 마지막 전투의 서막이 오른다.

키타기리 무네조는 어머니와 누나, 그리고 키에와 함께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누나도 하급무사에게 시집을 가고, 키에 역시 혼담이 성사되자 무네조는 번에 들어가 서양 전술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의 3주기를 맞은 키타기리는 추모 모임에서 돌아오던 중 키에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창고에서 키에를 발견한 키타기리는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간호하고, 예전과 같은 행복한 생활이 시작된다. 그러나 무네조의 친구인 야이치로가 반역의 주동자로 극형에 처해지자 스승인 토다는 무네조에게 비검인 오니노츠메를 전해주는데...

아코낭인 사건 이라고도 하는 이 사건은 도쿠가와 막부의 제 5대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가 집권하고 있던 1701년 에도성에서 일어났다. 칙사 접대를 담당한 아코성의 성주 아사노 다쿠미노카미가 의전 담당인 기라 고즈케노스케를 칼로 쳤으나 미처 죽이지 못하였지만, 그날로 할복을 하고, 가옥과 성이 몰수된다. 도쿠가와 막부의 조치에 불만을 지닌 아코성 가신인 오이시 구라노스케 이하 낭인 46, 총 47명이 그 다음해 12월에 기라의 저택을 급습하여 그를 죽인 후, 그 목을 아사노가 묻혀있는 센가쿠지(泉岳寺)로 들고가 복수를 완성하고, 1703년 3월 도쿠가와 막부의 결정에 따라 46명 할복했던 실제 사건을 그린 영화이다.

18세기 초, 막부정치가 안정되고, 산업이 발달해 도시가 성장하던 겐로쿠 시대. 쇼군의 명령에 따라 에도에 머물던 아코의 영주 아사노가 고관 기라와 대립해 싸움을 벌이고 만다. 평화의 시대, 성에서는 칼을 뽑지 못하게 한 법도를 어긴 아사노에게 할복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오오이시를 비롯한 아사노의 부하들은 주군을 잃고 절망에 빠진다.

에도 막부를 연 도쿠가와 정권은, 제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 치세 때 막번체제를 확립하고 다이묘들을 에도와 영지를 왕래하며 근무하도록 했다. 이는 쇼군의 권위를 강화하며, 다이묘들의 경제력을 소모하여 모반을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이를 '참근교대(산킨코타이, 参勤交代) 제도'라고 부른다. 고쿠타카 1만 5천 석의 유나가야 번의 꼬마 다이묘이자 번주 나이토 마사아츠는, 에도의 노중(老中) 마츠다이라 노부토키의 탄핵으로 금광의 금을 빼돌려서 반란을 모의한다는 의심을 받고 그 해명을 하라는 이유로, 본래는 8일이 걸리는 거리를 5일 안에 오라는 명을 받고 급히 에도로 향한다. 더구나 노부토키의 계속된 방해공작에 점점 에도로 도착하는 게 힘들어지는데...

일본 전국시대, 우에스기 겐신과 다케다 신겐의 유명한 "가와나카지마 전투"를 그린 영화

사토미가의 시즈공주(静姫)는 성을 공격한 괴무장들의 손아귀로 부터 달아나던 중 일행을 잃고 산 중을 헤매다 신베이(犬江親兵衛)라는 남자를 만난다. 그러나 신베이가 남장한 공주가 실은 여자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달려들자 그것을 피해 달아나다 이누야마 도세츠(犬山道節)와 이누무라 다이카쿠(犬村大角) 를 만나 성을 공격한 자들이 타마즈사(玉梓)의 부하들이며 사토미가에 걸린 저주와 팔견사의 존재에 대해 듣게 된다. 두 사람은 공주에게 자신들과 함께 다른 동료들을 찾기를 청하고 곧 세 사람은 길을 떠나게 된다. 한편 신베이는 자신이 만났던 남장여인이 사토미가의 공주라는 것을 알고 그녀를 타마즈사에게 넘겨 사무라이가 될 생각으로 공주 일행을 뒤 쫒는다. 이후 두명의 동료를 만난 일행은 적의 습격을 무찌르고 나머지 4명의 팔견사를 찾기 위해 여행을 하는데 그 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신베이에 의해 공주가 납치 당한다. 공주와 신베이는 계속 티격태격하지만 타마즈사의 부하들이 마을을 습격하고 아이들을 잔인하게 죽이는 것을 보고 그들의 무덤을 만들어주는 것을 계기로 조금 가까워지게 된다. 그러나 그들을 잡아 적에게 넘기려는 마을 주민들의 공격을 피해 도망친 동굴안에서 헤어졌던 동료와 다른 2명의 팔견사를 만나게 되면서 신베이는 그들에게 쫒겨나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