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이 형제 초기 작품으로 얀 슈반크마예르를 본뜬 인형(퍼핏)이 여러 주제에 대해 가르치는 구성을 갖고 있다. 펼쳐진 책을 머리에 쓴 슈반크마예르와 달리 강의를 듣는 인형(퍼핏)의 머리는 텅 빈 상태인데, 강의가 진행될 때마다 유사한 주제의 책으로 머리의 빈 공간이 채워지는 걸 볼 수 있다. 아홉 번의 강의마다 슈반크마예르 영화의 중요성이 다양하게 드러나며, 여러 영화적 기술이 특이하게 조합된 것이 특징이다.

침대에서 잠든 아름다운 여인의 머리맡에 머리빗이 놓여 있다. 빗은 여인의 마음과 꿈에 침투하는 것만 같다.

어두침침한 방 안에 남자와 여자가 있다. 방 밖으로 희고 밝은 해부실이 줄지어 있고 그곳에서는 인간을 대상으로 한 해부가 은밀히 진행 중이다. 아무래도 남자와 여자는 다음 해부 대상인 듯하다. 로코코 화가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회화에서 영감을 받은 이 퍼핏 애니메이션은 내러티브는 존재하지만 그 주제나 의미는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 ‘개인이 시스템 내에서 어떤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가’와 같은 주제를 암시하는 작품이다.

기이한 이미지에 집착하는 퀘이 형제의 독특한 취향이 이 애니메이션에서 완벽하게 실현된다. 16세기에서 17세기 회화 작품에서는 보는 각도에 따라 감상이 달라지도록 하는 테크닉이 유행했는데, 퀘이 형제는 여기에서 그 기법을 사용해 시각적 효과를 주고 있다.

실험주의 록 밴드 ‘히즈 네임 이즈 얼라이브 His Name Is Alive’의 음악을 사운드트랙으로 하는 3분짜리 안무 애니메이션. 봉제 인형, 흰 토끼, 종잡을 수 없이 움직이는 탁구공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보고 있으면 최면에 빠진 듯한 묘한 매력이 느껴지면서, 동시에 어떤 사건이 일어날 것만 같은 조마조마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마치 막스 에른스트가 만든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하다. 이 섬세한 흑백 영상은 러닝타임이 짧지만 퀘이 형제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