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영찬은 아주 어렸을 때 시각과 청각을 잃기 시작, 지금은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들리는 것은 온통 소음뿐인 상태가 되었다. 그는 스스로를 '달팽이'라고 부르곤 한다.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하려면 마치 달팽이처럼 촉각에 의존해 느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한 때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소외돼 있고 단절돼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순호'라고 불리는 한 여자가 그의 삶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키가 아주 작고 척추 장애를 안고 살아온 그녀는 영찬의 삶을 바꾸어 놓게 된다. 그녀와 결혼한 그는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었던 것들을 갈구하기 시작하고, 아주 외로웠던 이 달팽이는 눈썰매를 타고, 수영을 하고, 그 만의 언어로 수필과 시를 쓰는가 하면 연극 대본을 써서 아내로 하여금 연출하게 하기도 한다. 이제 쉽게 좌절하지 않는 영찬, 그러나 그에게도 여전히 헤쳐나가야 할 것은 있다. 바로 그의 통역자이자 안내인인 아내 없이는 아무데도 갈 수 없다는 것. 어느 날 한 사회복지관에서 만난 시각 장애인을 통해 두 사람은 영원히 함께 할 수는 없다는 사실과 순호 없이는 영찬이 쉽게 다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보행 훈련. 어느날 영찬은 아내 없이 혼자 사회복지관 차를 타고 보행훈련을 받으러 간다. 바닷속에서 수영을 하는 영찬의 목소리를 들려주며 마무리를 짓는다.

패배할 때도 있다. 그래도 승리를 향해 돌진한다. 어마리와 메릴랜드 청각장애인 학교 풋볼팀 선수들의 눈물과 땀. 그들은 예고 없이 찾아온 슬픔과 항상 따라다니는 차별에 맞서며 나아간다.

감독은 청각장애인인 부모가 처음으로 소리를 경험하는 생애의 기념비적 순간을 카메라에 담는다. 노부부는 65세의 나이에 달팽이관 이식수술을 받기로 하는데, 고요함에서 소리로의 여정은 쉽지가 않다. 얻는 것도 많고, 잃을 것도 많은 이들의 경험은, 다큐멘터리이자 한 편의 러브 스토리로 남는다. 재미와 흥미를 노린 픽션 작품들이 있음에도, 그에 비해 거칠고 정제되지 않는 다큐멘터리를 대중들이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삶의 진정성과 인생의 진실, 그리고 거기서 느껴지는 진한 휴머니즘……. 브로드스키 감독은 청각장애를 가진 친부모의 수술 전과 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낸 이 작품을 통해 우리의 기대를 충실히 채워준다. 부모가 수술을 통해 현재보다 더욱 행복한 삶을 살 것이라는 기대에서 다큐멘터리는 출발한다. 하지만 수술은 행복의 도구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알게 되는 것은, 부모의 장애가 그들 가족을 지켜주는 힘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들 가족 행복의 원천은, 가족이 서로 부족함을 이해하고 의지하며 함께 나누는 사랑이었다. 감독은 작품에서 수술 전 가족의 행복한 모습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수술 후 어머니가 겪는 혼란에 천착한다. 이들 가정의 행복한 모습이 아름다웠던 나는 이들 부모가 수술을 받고 소원하던 청력을 회복했다는 식의 해피엔딩을 기대했지만, 이것이 또한 다큐멘터리가 말하고 싶은 인생의 이야기가 아닐까? 감독은 이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우리가 가족을 통해 나누고 싶은 우리네 인생의 감성과 우리가 갖는 현실의 아픔을 직시하게 하는 우리네 인생의 이성을 순차적으로 잘 담아내고 있다. (EIDF 고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