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예수님을 창으로 찌른 롱기누스가 죄책감에 시달리며, 진정한 가치를 위해 길을 떠나는 여정을 그린 극영화
소방대장 캘럽 홀트는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해 불타는 빌딩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일보다 7년차 인 자신의 결혼 생활이 더 어렵다. 위기 속에서 동료애를 가장 중요시 여기는 그이지만 왠지 아내인 캐서린과의 관계는 삐걱거리고 있다. 계속되는 다툼에 마침내 둘은 이혼을 준비하는데, 캘럽은 아버지로부터 ‘사랑의 도전 (The Love Dare)’ 이라는 책을 선물받고, 40일 동안 매일 1장씩 읽으며 그 내용을 실천할 것을 권유받는다. 캘럽은 일단 아버지를 위해 책에 나오는 일들을 실천해 보지만, 캐서린의 태도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마침내 캘럽은 아버지에게 ‘계속해서 나를 못 마땅해하며 거부하는 상대에게 어떻게 사랑을 보여줄 수 있죠?’ 라고 묻는다. 아버지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 준 사랑’이라고 답한다. 캘럽은 서서히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진정으로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이제까지 남을 구조하는 데만 열중했던 캘럽은, 너무 늦기 전에 아내의 마음을 구조하기 위한 가장 어려운 임무에 돌입한다.
하느님이 혼돈으로부터 천지를 창조하시고,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를 빚어내셨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는 뱀의 꼬임에 빠져 금단의 열매인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이들은 직접 땅을 일구어 고단하게 살면서 카인과 아벨이라는 두 아들을 낳아 키웠다. 그러나 형제인 아벨을 죽인 카인은 이마에 죄인의 표지를 받고 에덴의 동쪽으로 향해 그 곳에서 자손을 퍼뜨리고 살게 되었다. 노아는 하와의 또 다른 아들, 셋의 후손이었다. 하느님은 인간이 점점 포악한 일만 일삼는 것을 보고, 한탄하여 자신이 창조한 모든 세계를 물로 멸망시키려 하나, 노아의 가족들만 살려주기로 하고 그에게 방주를 지어 홍수를 면하게 한다.
레이첼(매시 맥레인)은 짝사랑하는 연극반 남학생과 밤새 파티를 하고 돌아온 후 어머니에게 그 모습을 들키고 만다. 결국 외출금지와 함께 이모가 사는 시골마을로 떠나야만 했던 레이첼이지만, 그녀는 그곳에서 하나님을 다시 영접하고는 신실한 아이가 된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없는 자와 낮은 자를 위해 힘쓰게 된 레이첼. 그러면서 그토록 원하던 연극의 여자 주인공까지 따내게 된 그녀는 더욱더 자신의 믿음에 감사하게 된다. 그러면서 주변 인들에게도 자신의 믿음을 전파하게 되는 레이첼. 한편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던 에릭(David Errigo Jr.)과 딜런(Cory Chapman)은 평소 자신들을 괴롭히던 풋볼 팀들에게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다. 나치즘에 심취한 그들은 역대급 범죄를 준비하게 되고, 그들의 분노는 콜럼바인 고등학교의 선량한 아이들까지 큰 위험으로 몰아넣게 되는데...
아씨시 갑부의 아들 프란치스코는 전쟁에 출정했다가 그 참혹함에 충격을 받고 목숨만 부지한 채 귀향한다. 인간의 비참과 가난에 눈을 뜬 프란치스코는 자기 옷과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아버지와 결별하여 폐허가 된 산 다미아노 성전을 재건한다. 그리고 가난과 자유의 복음을 교황에게 전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탄압에서 구하기 위해 사울을 보내지만, 마음이 약해진 사울은 악령에 들린다. 결국 그를 대신해 왕으로 보내진 다윗. 이스라엘을 탄압하는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을 죽인 다윗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신임을 얻게 되자 사울은 질투에 못이겨 그를 죽이려 한다. 전투에서 사울이 목숨을 잃고 다윗은 결국 이스라엘 민족의 왕이 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아내를 빼앗은 다윗은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게 되는데...
황량한 어촌에서 구원만을 꿈꾸며 살아가는 ‘막달라 마리아’(루니 마라)는 정혼을 거부했다는 이유만으로 가족들에게조차 외면 당한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을 방문한 ‘예수’(호아킨 피닉스)와 그의 제자들로부터 깨달음을 얻게 된 마리아는 예수에게 직접 세례를 받은 뒤 유일한 여성 사도로서 그들의 여정에 동참하게 된다. 한편, 예수는 죽은 자를 살려내는 기적을 행하고도 다가올 자신의 운명 앞에서 괴로워하는데… 예수의 제자 중 그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그와 소통한 ‘막달라 마리아’가 목격한 진정한 구원은 과연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