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의 비극적인 전장에 뛰어든 세 여성 투사에 관한 이야기를 증언과 재연으로 재구성한 다큐멘터리다. 중국에서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했던 정정화, 제주 4.3항쟁에 뛰어든 김동일, 지리산 빨치산으로 활동한 고계연의 이야기이다. 임흥순 감독은 서로 다른 곳에서 조국의 독립과 통일이라는 공동의 꿈을 품고 절박하게 나아간 이 세 명의 투사들을 21세기 한국의 산과 계곡에서 되살려낸다. 다소 초현실적인 방식으로. 말하자면 그들이 남긴 자서전을 바탕으로 세 명의 현대 여성들이 역사 속의 세 인물을 연기하고, 그 퍼포먼스를 통해 60년의 격차를 지닌 두 개의 시간이 중첩되고 실제인물과 배우의 경험이 포개진다. 식민, 전쟁, 분단의 역사를 현재로 잇는 시간의 끈. 미술관과 영화관을 오가는 임흥순 감독의 작업은 초현실적인 시정을 자아내는 순간들을 다큐멘터리에 자연스레 끌어들여 남성 영웅의 세계인 대문자 ‘역사’에 균열을 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