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비참한 삶을 살았던 김순악은 해방 이후 생존의 궁지에 몰려 유곽에서 생활하기도 했고, 미군 기지촌에서 ‘색시 장사’도 했으며, 미군에서 나온 물건을 팔러 다니기도 했다. 전주국제영화제와 깊은 인연을 가진 박문칠 감독은 한 인물을 성스럽게 포장하거나 박제화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삶을 생생하게 기록해 우리에게 보여준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인 전장에 뛰어든 세 여성 투사에 관한 이야기를 증언과 재연으로 재구성한 다큐멘터리다. 중국에서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했던 정정화, 제주 4.3항쟁에 뛰어든 김동일, 지리산 빨치산으로 활동한 고계연의 이야기이다. 임흥순 감독은 서로 다른 곳에서 조국의 독립과 통일이라는 공동의 꿈을 품고 절박하게 나아간 이 세 명의 투사들을 21세기 한국의 산과 계곡에서 되살려낸다. 다소 초현실적인 방식으로. 말하자면 그들이 남긴 자서전을 바탕으로 세 명의 현대 여성들이 역사 속의 세 인물을 연기하고, 그 퍼포먼스를 통해 60년의 격차를 지닌 두 개의 시간이 중첩되고 실제인물과 배우의 경험이 포개진다. 식민, 전쟁, 분단의 역사를 현재로 잇는 시간의 끈. 미술관과 영화관을 오가는 임흥순 감독의 작업은 초현실적인 시정을 자아내는 순간들을 다큐멘터리에 자연스레 끌어들여 남성 영웅의 세계인 대문자 ‘역사’에 균열을 가한다.

농부 노병만 씨의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 광산에 끌려간 후 조국으로 돌아와 병마에 시달리다 돌아가셨다. 그는 시시때때로 일본으로 가 일본 정부의 책임을 묻기 위한 1인 시위를 벌인다. 최경숙 씨의 아버지는 1960년대 독도에 들어가 1987년 사망할 때까지 독도 주민으로 살았던 최종덕 씨다. 그녀는 ‘최종덕 기념사업회’를 이끌며 독도를 오가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아버지의 뜻을 기리기 위해 헌신적인 활동을 벌이는 중이다.

야스쿠니신사 합사 취하소송을 하고 있는 한국인 유족 이희자씨. 일제 강점하 한국인의 피해보상을 위해 활동하는 일본인 후루카와씨. 두 사람은 1995년, 대지진으로 수천명이 죽었던 일본 고베에서 처음 만났다. 그리고 지난 6월, 두 사람은 중국의 광서성을 찾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