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카 사업, 광산 개발 등 무분별한 개발 계획에 몸살을 앓는 그랜드 캐니언의 소중함을 다시금 되새기고자 사진작가와 작가가 걸어서 그랜드 캐니언을 종주하는 과정을 다룬 영화

<포와카시>에서의 주요 소재는 ‘인간’이다. <코야니스카시>에서 그저 그림 중 하나, 광경 중 하나로만 등장했던 인간의 존재는 이제 카메라의 중심에 등장한다. 영화는 처음에 제3세계의 농촌 혹은 어촌에서 살고 있는 인간들의 모습을 비춘다. 돌을 옮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시작하는 영화는 자연 속에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 직접 몸을 움직여 노동하는 인간들, 그리고 종교의식을 행하고 있는 인간들의 모습을 비춘다. 이 카메라가 도시 문명과 농촌 문명이 아직 공존하는 제3세계의 도시에서 살고 있는 인간들을 보여준 후, 이번에는 마천루와 자본, 그리고 미디어와 광고가 지배하는 메트로폴리스에서 살고 있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카데미상 노미네이트 2회에 빛나는 캐서린 키너(《카포티》, 《존 말코비치 되기》)가 내레이션을 맡은 디즈니네이쳐 《북극곰》. 갈수록 가혹해지는 생존의 환경 속에서 갓 낳은 새끼를 기르며 진정한 어미로 성장해 나가는 한 북극곰의 여정을 담았다. 디즈니네이처 《펭귄스》를 공동 연출한 알래스테어 포더길과 제프 윌슨이 다시 한번 메가폰을 잡았으며, 로이콘리와 함께 제작에도 참여했다.

5천년에 걸친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환경의 변화다. 옛 자연에서 새 자연으로, 즉 자연의 환경에서 테크놀로지의 환경으로 변한 것이다. 이것은 여러 제국들보다 중요하고, 세계 종교보다 강력하며, 대전투보다 결정적이고, 지구상의 온갖 격변보다 훨씬 충격적이다. 는 이러한 환경의 변화를 다루고 있다. 지구상의 조화를 꾀하는 방식이, 자연의 경우 다양한 차이의 미스터리를 통해서라면, 새 자연은 테크놀로지의 균질화를 통해서다. 는 이 단일한 사건의 반영이며, 여기서 우리의 주제는 미디어 그 자체다. 기술의 요람, 테크놀로지의 결정체. 미디어가 바로 우리 이야기이다. 인간은 테크놀로지를 도구로서 이용하는 게 아니라, 아예 삶의 한 방법으로서 테크놀로지를 통해 존재한다. 이제 테크놀로지는 인간에게 있어 산소와 같은 것이 되었고, 인간은 이제 테크놀로지 없이는 살 수가 없다. 테크놀로지의 욕망은 무한하기 때문에, 유한한 자연의 세계를 소모하고 있다. 결국 테크놀로지는 결국 ‘나코이카시’, 즉 전쟁으로서의 삶이다. 삶의 힘에 대한 허가된 공격인 것이다. 는 우리를 지구상 어디에도 없는 곳이자 동시에 어디에나 있는 곳으로 여행을 안내한다. 이미지 그 자체. 그것이 바로 우리의 로케이션 장소다. 여기서는 가상공간이 실제공간을 압도한다. 옛 신들이 폐위되고 새로운 빛의 만신전이 통합된 컴퓨터 회로에서 나타난다. 그것의 진실이 진짜 진실이 된다. 미래와 자연경관, 비극과 반짝이는 희망이 동시에 이미지와 음악의 디지털 파도 속에서 하나로 융합된다. 새로운 세계가 오고 있다. 새로운 세계가 여기 있다. 는 이에 대한 코멘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