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디앤 볼쉐이 림은 미국 가정에 입양되어 한국에서 새로운 고향으로 보내졌다. 캘리포니아에서 자란 딘은 반복되는 꿈을 통해 한국인 어머니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를 알기 전까지 딘은 친가족에 대한 기억을 거의 지워버릴 뻔했다. 친가족과 입양가족을 용감하게 하나로 묶어낸 딘의 진심 어린 여정을 통해 <일인칭 복수>라는 가족과 상실, 두 정체성의 화해에 관한 가슴 뭉클한 에세이를 완성했다.
1951년, 한국전쟁 고아 1,500명이 비밀리에 폴란드로 보내졌다. 낯선 동양 아이들의 상처를 함께 먹고, 자고, 가르치고, 울고, 웃으며 사랑으로 보듬은 폴란드 선생님들. 아이들은 진심 어린 보살핌에 차츰 마음을 열고, 선생님들을 '마마', '파파'라 부르며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1959년, 갑작스럽게 아이들은 북한으로 송환되고 이 사실은 역사에 묻히게 된다. 2018년, 남북의 두 여자가 아이들과 선생님의 행적을 찾아 폴란드로 떠난다. 함께 하는 여정에서 서로가 남과 북에서 얼마나 다른 삶을 살아왔는지를 확인하게 되는 두 사람. 가슴 속 마지막 이야기를 터놓지 못하던 그들은 아직도 아이들을 가슴으로 기억하고 있는 백발의 폴란드 선생님들 앞에서 동시에 눈물을 흘리는데…
1951년 7월, 한국전쟁 당사자들은 휴전을 모색한다. 휴전을 위해, 연합군과 공산군 양측은 개성 동북쪽에 위치한 내봉장에서 협상을 시작한다. 그러나 서로 날카롭게 대립할 뿐, 협상은 나아가지 못한다. 1951년 10월이 되면서 양측은 개성 아래에 있는 널문리 작은 마을에서 다시 만난다. 그들은 그곳에 협상을 위한 천막을 세우고, 판문점이란 이름을 붙인다. 널문리를 뜻하는 ‘판문’과 주막의 ‘점’을 합한 이름, 판문점은 그렇게 탄생했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인 전장에 뛰어든 세 여성 투사에 관한 이야기를 증언과 재연으로 재구성한 다큐멘터리다. 중국에서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했던 정정화, 제주 4.3항쟁에 뛰어든 김동일, 지리산 빨치산으로 활동한 고계연의 이야기이다. 임흥순 감독은 서로 다른 곳에서 조국의 독립과 통일이라는 공동의 꿈을 품고 절박하게 나아간 이 세 명의 투사들을 21세기 한국의 산과 계곡에서 되살려낸다. 다소 초현실적인 방식으로. 말하자면 그들이 남긴 자서전을 바탕으로 세 명의 현대 여성들이 역사 속의 세 인물을 연기하고, 그 퍼포먼스를 통해 60년의 격차를 지닌 두 개의 시간이 중첩되고 실제인물과 배우의 경험이 포개진다. 식민, 전쟁, 분단의 역사를 현재로 잇는 시간의 끈. 미술관과 영화관을 오가는 임흥순 감독의 작업은 초현실적인 시정을 자아내는 순간들을 다큐멘터리에 자연스레 끌어들여 남성 영웅의 세계인 대문자 ‘역사’에 균열을 가한다.
1950년부터 1953년까지 한국 전쟁으로 남과 북에서 10만 명의 전쟁고아들이 발생했다. 전쟁의 상처를 치유할 능력조차 없던 시절, 남과 북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전쟁고아 문제를 처리하게 된다. 남한의 전쟁고아들이 ‘해외 입양’이라는 방식을 통해 유럽과 미국으로 이주했다면, 북한의 전쟁고아들은 동유럽 여러 나라에 분산 수용되는 방식이었다. 이름하여 현지 ‘위탁 교육’이었다. 그 결과 폴란드, 루마니아, 불가리아, 체코, 헝가리 등 동유럽 낯선 곳들에서 5천 명에서 1만 명에 달하는 북한 전쟁고아들이 10년 동안 생활을 했다. 이 이야기는 그들의 숨겨져 있던 삶에 대한 기록이다.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이었던 친할아버지와 인민군이었던 외할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나는 여전히 단단하게 분단된 한반도의 남쪽에서 살고 있다. 어느 따뜻한 봄 날, 나는 나의 한 쪽 뿌리의 죽음을 목격했다. 어린 시절 목격한 외할아버지의 죽음은 어른이 된 나에게 계속해서 고통스러운 질문을 던진다. 할아버지는 그 날,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것일까?
참전용사인 유영복과 마리온 데이비스는 전쟁이 끝난 후 비슷한 방식으로 각자 살아가고 있다. 종전 후, 기억의 편린들은 어떻게 그들의 삶을 지배해왔을까? 현재 진행형인 그들이 갖고 있는 ‘기억의 유산’을 되새겨 본다.
외할아버지의 백수(99세) 잔치가 끝난 후, 손주대표로 생일카드를 읽은 나는 할아버지에게서 자서전을 의뢰받는다. 이년 후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 부탁은 숙제로 남았다. 외할아버지에 대한 나의 기억은 늙고, 검소하고, 자상한 어른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색한 그의 이름은 OSS 특수요원, 한국전쟁이 시작하던 당시의 치안국장 등으로 낯설었다. 외할아버지의 이름을 검색하 며 연관 짓지 못했던 과거의 역사를 알게 되었고, 필름메이커가 된 나는 나의 삶과 멀었던 이들의 장례에 자주 참석하게 되었다. 개인이 어떤 나라의 국민이 되고, 혹은 되지 못할 때, 그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국가는 국민을, 그리고 인간을 어떻게 지키며, 지켜주지 않으며 또 기억하고, 잊는가를 자꾸만 묻게 되었다.